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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정공>여존실기(如存室記)
如存室記 鵲峰兀於北鴈岡列於南其中即吾先自十三世至近世世藏之地也以尚未建墳菴一棟爲齎恨者深矣今春幸得一階梯爲築室四間於兩地相望處三間爲墓直居一間稍廣設書其樑曰春雨濡秋霜降松楸欝蒼其微意固有在矣前闢東南雙扃爲豁升降出入隅置上下壁藏爲奉籩豆床卓其制甚苟簡而我宗十數家齊力同聲卒歲而僅得室階之具終始良苦者正基與數三人也是歲十月泰仁公墓享日天雨莫得奠享於墓階故以設位於此室而悦誠將事則明明先靈庶幾降臨於群誠之攸格矣室成之初誠一會合也諸宗相吿曰室不可以無標榜余乃敬應曰古經所謂事亡如事存者是追遠報本之彝訓也榜以如存何如僉曰庶可爲稱情也矣其後余從閔丹雲先生遊奉書如存室三字而揭于室顏室之自有顔色固不暇論而亦至增采於峰岡之眺望矣噫我宗之爲建此室者莫以室功吿成爲吾事己畢畢生而益勤如存之誠於身心内外無毫分餘憾於追遠報本之道然後可以免不如之譏誚矣勉之哉勉之哉余竊不自勝微衷之有感爲記顚末如右更願我宗來世雲仍之森羅毓靈於鴈岡之重重廩囷之積崇聚氣於鵲峰之峨峨益爲廓張此室而具完丙舍之體制又逐先壟所在地次第有營建齋室而俾伸今日未盡底誠意焉 司直公後孫 炳寬 謹識 여존실기(如存室記) 까치봉이 북쪽에 우뚝 서 있고 기러기 매뿌리가 남쪽에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는 곧 우리 十三세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안장해 온 땅이다. 아직 분암(墳菴)한 동을 세우지 못한 것을 한으로 품은 지사 오래더니, 금년 봄에 다행히 한 계제를 얻어 두 땅을 서로 바라보는 곳에 四간 집을 지어 三간은 묘직이가 살 게 하고 一간은 조금 넓게 만들어 그 들보에 쓰되 봄에 비가 적시고 가을에 서리가 내리는데 송추가 울창하다 하였으니, 그 보이지 않는 뜻이 진실로 있는 곳이 있다 하겠다. 동남으로 쌍문을 내어 오르내리며 출입하기에 편리하게 하고 모퉁이에 상하 벽장을 두어 제기와 제상이며 탁자를 두었으니, 그 제도가 구차하고 간소하지만 우리 종중 수십 집이 힘을 합하고 소리를 같이하여 겨우 집과 섬돌을 갖춘 것이다. 시종 고생한 자 는 정기(正基) 외에 수三인이었다. 이 해 十월 태인공(泰仁公) 묘향(墓享) 날에 비가 와서 묘정 향사를 할 수 없으므로 이 집에 설위하고 지성으로 향사하였은즉 밝으신 선령이 거의 여러 지성의 이른 바에 강림하셨을 것이고 집을 이룬 뒤에 처음 회합이었다. 제종이 서로 고하되 집이 있으면 이름이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고 하므로 내가 이에 공경히 대답하되 『옛 글에 이른바 죽은 사람 섬김을 살아 있는 사람 섬기듯 하라.』 한 것은 원조를 추모하고 근본에 보답하라는 떳떳한 훈계이니, 여존(如存)으로 이름한 것이 어떤가, 하니 첨종이 모두 그렇게 하면 거의 뜻에 맞을까 한다 하였다. 그 뒤에 내가 민단운(閔丹雲) 선생에게서 「여존실」 세 자의 글씨를 받아 집에 걸고 나니, 집 전체가 빛이 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또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광채를 더하게 되었다. 아! 우리 문중의 이 집을 세운 자는 집이 준공된 것으로 내 일을 마쳤다 하지 말고 일생 동안 더욱 부지런히 하여 계신 것 같은 정성을 다하여 몸과 마음속에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도리가 일호의 여감이 없게 한 연후에 가히 같지 않다는 비방을 면할 것이니, 힘쓰고 힘쓸지어다. 내가 내 중심에 감개한바 전말을 위와 같이 기록하고 다시 원하오니, 오종은 후세 자손이 빽빽하게 들어서 중중히 둘러선 기러기 메뿌리에 신령을 기리고 창고에 곡식을 가득히 저장하며 높은 까치봉의 기운을 모아 더욱 이 집을 확장하여 병사(丙舍)의 체제를 완전히 갖추고 또 선롱 소재지를 따라 차례로 또 재실을 영건하여 오늘날 다하지 못한 성의를 펼지어다. 사직공 후손 병관 삼가 기록함(司直公 後孫 炳寬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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